밴드소개

전설적인 밴드 Queen과 프레디 머큐리

Tooth Breaker 2017. 8. 29. 17:20

이번 편은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퀸과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글입니다.




퀸을 제일 먼저 떠올렸을 때 무슨 곡이 먼저 생각이 나십니까? 보헤미안 랩소디? 위 아 더 챔피언?

아마 수 많은 명곡이 생각날 겁니다. 이번 편은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퀸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데뷔 당시의 퀸은 시퍼런 신참 밴드인데다가 무명이었기 때문에 설움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그 때 당시 소속사에 워낙 엄청난 선배 가수나 밴드들이 많아서 녹음실에서 제대로 녹음할 시간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른 선배 가수들이 녹음을 마친 후 잠깐 짬이 날 때를 이용하여 한 곡씩 빠르게 녹음했다고 전해집니다.

 

1집은 데뷔작인 만큼 언론이나 대중에게서 큰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치있는 곡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80년대 초반까지 수 많은 콘서트에서 공연되었던 킵 유어셀프 얼라이브와 아주 늦게 평론가들과 퀸의 팬들에게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은 그레이트 킹 랫과 같은 곡이 앨범에 포함 되었습입니다. 라이어 같은 경우 프레디가 퀸에 들어오기 전에 만든 곡인데, 가사만 본다면 훗날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어전 편 역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중과 언론 및 평론가들의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데뷔 앨범으로 엄청난 앨범은 아니었지만, 크게 성장할 밴드로서의 가능성이 있다는 평이 다수였습니다. 어쨌거나 상업적으로는 이익을 거두지 못했고, 타이틀인 킵 유어셀프 얼라이브는 순위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앨범은 기대 이상으로 일본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 이후부터 퀸의 노래는 일본에서 계속적인 히트를 하게 됩니다.

 

 

퀸은 대학 시절 중에 아마추어 밴드를 하던 중 로저 테일러와 브라이언 메이가 하고있던 스마일이란 밴드를 기웃거리던 프레디는 보컬인 팀 스타펠의 소개로 팀원들과 만나게 됩니다. 이후 팀 스타펠이 험피 봉이라는 밴드에 들어가기 위해 스마일을 탈퇴하자 프레디는 바로 그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팀의 베이스를 구하기 위해 오디션을 열었고, 몇 번의 오디션 끝에 존 디콘을 영입하여 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후일 여담으로 로저는 스마일 밴드 시절 때 웬 이상한 녀석이 공연 때마다 기웃거리며 공연에 대해 잔소리를 했는데 그게 프레디였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잔소리가 싫지 않았다고 합니다.

팀 스타펠은 프레디와 잘 맞는 친구였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에 프레디와 팀 스타펠이 책상을 드럼삼아 두들기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마다다른 친구들은 또 쟤네 노래부른다 라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프레디는 생각보다 내성적이지만, 가끔식 쾌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낯선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합니다. 하치만 자신이 좋아하는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엄청나게 노래를 많이 부르고 장난도 잘 친다고 하네요.

 


 

사실 밴드 명을 'Queen' 으로 제안한 것도 프레디 머큐리였습니다. 처음에 다른 멤버들은 눈에 불을 키며 퀸이란 밴드명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퀸이라는 단어는 속어로 동성애자의 뜻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죽지 않은 한 밴드명을 퀸으로 하겠다고 엄포를 하였고, 다른 멤버들도 그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밴드 이름은 퀸이 되어버렸습니다.

퀸 초기 시절에 글램 락의 영향을 받아으므로 긴 머리, 검은 손톱, 검은 눈, 날개달린 옷, 스키니한 옷을 주로 입었는데 많이 민망한 의상이지만 의외적으로 소화를 잘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한 인상을 가졌고, 하체가 길고 가늘어서 잘 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개옷은 점차적으로 입지 않았지만, 스키니와 타이즈는 퀸 중반기에도 많이 보입니다.

퀸 초기의 프레디는 유별나게 조명과 옷에 집착했다고 합니다. 공연 준비에 대한 금액의 절반을 의상과 조명에 투자 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심지한 남들이 절대 입지 못하는 기괴한 의상을 멤버들에게 입으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 공연 준비를 하는 대기실에서 멤버들에게서 자주 난 이 옷 진짜 못입겠어 라는 소리가 자주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나 퀸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고, 낯을 가리던 성격의 멤버 존 디콘이 가장 힘들어 했다고 하네요.

 

 

프레디 머큐리는 말년에 에이즈로 고생하다 죽었습니다. 911123일 에이즈 감염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날에 사망했습니다. 당시 발표되었던 언론에 따르면 프레디가 죽을 당시에는 눈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멤버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레디가 멤버들에게 이미 너희들이 알고 있지만, 말하지말고, 자신도 다를 것 없이 대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레디는 음악을 하다 죽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밴드 멤버들은 수긍하여 입을 무겁게 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의 뜻에 따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앨범작업에만 몰두했습니다.

병이 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레디는 열정으로 약을 먹어가며 끊임없이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몸이 잠깐 회복되면 다시 작곡작업을 재개하고 노래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프레디의 생전 마지막 정규앨범인 인누언도를 작업할 때 멤버들은 프레디의 몸 상태를 고려하여 그들이 먼저 녹음하고 악기파트를 완성한 상태에서 프레디의 컨디션이 좋을 때만 불러서 녹음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프레디의 마지막 싱글이었던 더 쇼 머스트 고온은 노래의 음이 많이 높아서 멤버들은 프레디가 과연 그 곡을 부를 수 있을지 많이 걱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레디는 걱정하는 멤버들에게 걱정없다는 장난기 없는 얼굴로 할거라고 말을 한 후, 투병 생활 중임에도 불구하고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마시더니 음이탈없이 한 번에 녹음을 마쳤다고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사망하기 전 1년 동안 그는 뉴스나 언론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병색이 깊어져 더 이상 치료가 진행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자 그는 더 이상의 치료를 거절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에이즈라는 병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였습니다. 에이즈는 십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종 병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프레디가 점점 죽어가고 있을 때 프레디 곁에는 그의 애인인 짐 허튼이 함께 있었고, 그 애인은 프레디의 임종까지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도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프레디에게 그 사실을 1년정도 숨겨왔다고 하네요. 그는 이제 없지만,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기억되고 연주되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저로써도 이런 밴드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오늘은 음악 및 밴드소개를 여기까지 적고, 마치겠습니다.